국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기획 인물 칼럼 논단 사설 광장 연재
> 뉴스 > 칼럼 > 종교
     
신본주의 신학
2017년 11월 27일 (월) 17:04:11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verehomo@hanmail.net
   
▲ 한숭홍 박사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의 쟁점은 기독교가 신본주의(theocentrism) 종교냐, 인본주의(anthropocentrism) 종교냐에 대한 논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인본주의 관점에서 신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주창자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 반면에 신본주의 신학은 정통성을 이어가며 교회를 지배했고, 세계 신학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신본주의 신학자들의 신학에는 인본주의 사상이 바탕에 깔려있으며, 이를 수용-용해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들의 신학이 정립되었는데, 저들은 이 점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다. 문제는 신학이 신본주의 사상으로만 정립될 수 있는 독창성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신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문화다. 그리고 문화의 창조자는 인간이다. 신학자들은 이 점을 의도적으로 부정하며 성서를 극단적으로 해석했다. 저들은 기독교를 인간의 종교가 아닌 신에 의해 계시된 종교, 신에 의해 주어진 종교로 역설하며 사회를 지배해왔고, 문화를 기독교로 정복했다. 타 문화권에 대한 배타주의와 초토화 선교는 신본주의의 극단적 오류임을 저들은 오히려 신에 의한 예정으로 역설하며 전승의 노래를 개선가로 부르며 기독교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다. 엄밀히 보면 신본주의에 정초 되지 않은 종교는 존재할 수 없다. 세계의 모든 종교, 원시 인간이 믿었던 원시 신앙까지도 거시적 안목으로 보면 신본주의에 의한 신앙의 표현이었다. 신본주의가 완전히 배제된 신앙은 이데올로기이며, 이런 신앙으로 교조화된 사상은 국가지상주의다.
  
나는 기독교 자체가 인본주의 종교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극단적 신본주의의 위험성은 샤머니즘이나 사교 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기독교가 현대 과학주의에 밀려나면서 이런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무당 짓을 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독교의 극단적 신본주의는 기독교를 파괴하는 독소며, 이런 신학은 위선으로 포장된 신학 파괴주의다. 21세기 신학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자신만의 신학을 만들어보려는 신학자라면, 이런 거대한 이상을 펼쳐보려는 신학자라면 신학의 미래를 큰 그림으로 그려가며 자신만의 신학 함을 자신의 ‘학(Wissenschaft)’으로 축성해 가며, 신학의 정통성이란 미명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미래, 새로운 세계관을 견인해갈 수 있는 신학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20세기 중엽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세계의 많은 신학자가 자신의 신학을 만들어 보려고 무슨 새로운 명칭의 신학을 발표하곤 했지만, 대체로 저들의 의도는 신본주의를 재해석하거나 문화화, 혹은 사회화하는 데 역점을 둔 이론 잔치였다. 요즘 구미 신학자들 가운데는 신학의 근본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정리하는 정도의 신학 정리 작업으로 세계 신학계에 새로운 신학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이런 신학의 시대가 이미 끝난 것을 저들은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런 시행착오를 하며 ‘새신학(new theology)’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기독교도 신본주의 종교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계관과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로 달라진 시대성, 예측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의 기술의 인간 지배, 인간복제 이후의 생명체 생산력, 지구 밖 행성에 인간을 식민시키려는 과학자들의 노력 등등 아주 다양한 과학 기술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런 급변하는 세계관으로 의식 구조가 주형 되어가고 있는 세대에 19세기의 종교적 정서가 부합할 수 있을까.
  
신학도 이제는 생명중심주의(Biocentrism)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위기가 유럽과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교회 수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상을 설교나 교회 행사의 문제로 여긴다면,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기독교 자체가 신중심주의에 역정을 두며 과학기술의 세계관을 간과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세계는 변해가는데 교회는 정통보수를 견지하려는 괴리 현상이 오늘의 교회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나는 신본주의 자체를 부정하거나 탈신본주의(Enttheozentrismus)를 역설하는 신학자가 아니다. 다만 신본주의 독단에 빠져 시대의 흐름마저 신본주의에 맞추어야 한다는 교회의 고집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는 바이다.
  
신학은 학문인 한 가변적이며, 시대성에 부응하는 학문이다. 신학을 ‘삶의 자리(Sitz im Leben)’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다. 기독교는 신학으로부터 양육되는 기관이다. 교회는 기독교 신학으로부터 성경 해석의 원리를 받아 설교 현장에 펼치는 도구다. 이런 상식적인 결론으로 글을 마친다.
ⓒ 크리스챤월드모니터(http://www.cwmonitor.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부산시교육청, 각급 학교에 지진 관련
성락교회 개혁측, 개혁선언문 발표
민주당 보이콧한 안성 임시회 폐회…'
난임시술 건보 적용 하나마나?···'
"검사의 불기소처분 억울해" 5년간
특검·이재용, '안종범 수첩' 증거능
검찰, '방송 블랙리스트' 한학수 P
靑, 직원 보안앱 사생활 침해 부인·
수돗물 값 오를까?···서울시는 가격
文대통령 국정지지도 72%…전주 대비
애수의 노래
장미꽃 고이 안고
오소서 임마누엘
트럼프, '예루살렘 선언' 강행 왜?
사회가 공감하는 신앙을 되찾자
심은대로 거두다
신광수 목사, “한기연 탄생은 안된다
한교연, 법인명 ‘한국기독교연합’으로
한기총,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통일선교아카데미 제5기 수료식 가져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12-7 인의빌딩 2층 | Tel 02-3673-0121~4 | Fax 02-3673-0125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아01022 | 등록일자 : 2011.12.2 | 발행인 : 신명진 | 편집인 : 신명진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최선림
Copyright 2009 크리스챤월드모니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wmonit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