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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향기
2017년 07월 12일 (수) 13:32:24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verehomo@hanmail.net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창문 밖 풍경은 평온한데
내 맘은 왜 이리 서글픈가!
소나기 한차례 지나가고
꽃잎마다 머금은 빗방울
햇빛에 수정처럼 영롱이는데
내 맘엔 아직도 비가 나리네

당신을 한 줌의 재로 묻던 날
고통 없이 간 것도 복이라며
애써 아이들 위로했지만
내 맘은 어떻게 위로 되나요?

폐암이 당신의 뇌로 뼈로 전이되어
수술도 방사선치료도 할 수 없고
표적치료제 한 알씩을 복용하며
반년 정도 시한부로 살아야 한다는
주치의의 판정을 전해 듣고
나는 잠시 넋을 잃었어요
일생에 처음 겪은 망아(忘我)의 순간!

당신의 생명이 하루씩 줄어들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으니
때로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하루하루가 쌓여가며
반년이 5년으로 이어졌으니
이 5년은 우리 생애 최고의 나날이었소

몸을 뒤척이다 눈을 뜨면
나는 습관처럼 잠자고 있는
당신 얼굴을 내려다보며
당신의 하루가
숨소리로 연장되기에
내 가슴은
 신성한 비의(秘儀)에 떨리곤 했어요
당신에게 감사하며 환희에 벅차

창가에는 각가지 양란들을 매달아놓고  
가늠죽, 선인장, 고무나무, 행운목과
나로선 알 수없는 관엽식물들은
꽃밭주변에 놓아 운치를 더하며
발코니를 자연의 숲으로 가꾸었던 당신
당신이 사랑했던 것들
당신의 손길이 닿는 곳 마다
생명의 조화는 자연의 축소판이 되었죠
자연을 사랑하고
마음에 자연을 품고 살아왔던 당신
지금은 당신이 자연으로 돌아갔네요

우리가 함께할 날들이 점점 짧아지며
당신을 보고 있는 눈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고이곤 했어요

때로는 내 스스로 죄책감에 괴로웠어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지내온 46년은
나에게 헌신한 당신의 생애였어요
당신은 걷기 불편한 나의 발이 되었고
내가 어디를 가려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동행했었죠

당신이 떠난 후 내 맘에 밀려오는 공허감
때로는 내 자신마저 잊어버리곤 했어요
내가 나를 의식하지 못하는 초극의 순간들
비존재감에 휩싸이곤 했던 무아의 순간들
어제나 오늘이나 그런 순간들이
점점 나의 삶이되어가네요
 
하루에도 당신 사진을 수없이 보건만
날이 갈수록 그리움은 더해갑니다

70고개 못 넘긴 당신의 삶!
그러나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었소
암환자에 좋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매주 가져온 홍제동 올케
아침마다 한 시간씩 기도해준 동서
성당에서, 교회에서 기도했던 친구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한다며
화요일마다 산속 별장에 대려가
온종일 자연에서 지내게 한 친구
십자매로 결속된 친구들의 우정
정기적으로 만나는 여러 모임의 친구들
철철이 별미 음식을 해오는 친구
보양식을 만들어 오는 친구
기분전환 시켜준다며 강변 카페로
분위기 좋은 숲속의 양식당으로
산자락의 무공해 토속 음식점으로
매일 당신의 일정에 맞추어
시간을 내어준 친구들
당신에게 주어진 5년은 복된 시간이었소
그 시간의 삶에서 당신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여행도 하고
휴양림에서 몇 날씩 머물기도 하며
그렇게 바쁘고 즐겁게 살았어요
 
4년이 지나자 1년만 잘 견뎌내면
임상적 완치판정을 받는다며
온 가족이 설렘의 나날을 보냈는데
표적치료제 약효가 떨어지고
뇌에는 암세포가 여러 개 생겨나고
감마나이프 시술도 어떤 치료도 
의미가 없다는 주치의의 최종 진단
그러나 우리는 최후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당신은 암을 다스리며 오기로 산다고
초연한 모습으로 말하곤 했었는데
암 완치판결의 한계선인 5년을 
100일 앞두고 우리 곁을 떠났으니
나의 허망한 맘을 무엇에 비기리오!

가끔 아이들에게 넋두리처럼
엄마대신 아빠가 갔으면
너희들이 편했을 텐데...
이런 말을 했다가
아이들 표정을 읽고는
머쓱해지곤 했어요
하지만 이 마음,
나의 진심이에요

당신이 떠난 지도 1년이 되었네요
아직도 우리 침실은 그날 그대로에요
당신의 향기가 방안에 스며있어요

침대 머리맡에는 당신 사진 두 장이
그 옆에는 당신이 쓰던 화장품들이
내 베개 옆에는 지금도 당신의 베개가
당신의 체취를 배어내고 있어요

당신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그곳에 있는데
곳곳에 당신의 흔적도 그대로인데 
당신의 자리만 비어있네요
 
당신은 돌아올 수 없지만
나는 당신의 사진을 보며
눈빛으로 당신을 만나기도 하고
당신과 지내 온 시간을 떠올리며
슬픔도 기쁨도, 그리움과 애절함도
마음속에 삭이며 나날을 보내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당신
인생의 번뇌에서 벗어난 당신
기리 살며 편히 쉬소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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