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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지식”은 구원을 위하여 얼마나 필요한가? 회심과 변혁의 대안적인 이해를 향하여
2016년 09월 23일 (금) 11:44:14 문전섭역 (전 대전신학교 교장. 선교사) moonjs@hotmail.com
Larry W. Caldwell, Ph.D. (lcaldwell@sfseminary.edu) 문전섭역 (전 대전신학교 교장. 선교사) 한국 남한에서 국제 선교 학회의 2016, 8월 11-16일에서 발표된 것임



서론

다음의 사례 연구로 말 문울 열어 보자. 당신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무슬림 나라에서 살고 있는 선교사이다. 당신은 이제 2년 동안 만수르 알리 (Marinsour Al)i의 친구로 지내왔다. 만수르는 독실한 무슬림이다. 당신이 카페에서 당신의 주례적인 대화들의 한 기회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 때, 만수르는 그가 최근에 한 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가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였다고 당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또한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을 알고서, 만수르는 이제 그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당신에게 묻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응답하는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는” 이 선언은 만수르가 장차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에 충분한가? 관련하여, 이 선언은 만수르가 생의 변혁을 시작하기에 충분한가? 확실히 하나님만이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아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수르가 그의 결단이 신임할만한 구원 결단이 되기 위하여 알 필요가 있을 예수님에 대한 더욱더 필수적인 지식이 있는가? 혹은 그의 결단은 이미 우선적으로 그의 결단으로 이끌었던 수많은 작은 변혁들을 반영하는가?

회심과 변혁은 결코 지울 수 없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진정한 변혁-그리하여 종교적인 변화-은 어떤 형태의 “회심”이 신자의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후에 까지는 생길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전통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흔히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질문을야기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예수 지식”이 회심이 생기고 또한 변혁이 시작하기 위하여 충분한 구원 지식이 되는가? 과거에 있어서, 회심 이론은 주로 변혁을 회심 그 자체에 대한 한 통전적인 부분으로서 보다는 오히려 회심의 한 결과로서 검토했던 것이다. 대조적으로, 이 논문은 회심을 가장 중요한 종지(end)로  검토할 것인데, 말하자면, 변혁과 종교적인 변화는 흔히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개인의 삶에서의 복합적인 사건들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을 논의하며, 회심을 본질적으로 결국에 회심으로 이끌며 또한 그것 다음에 따라오는 변혁들의 절정으로 보면서 말이다.

회심을 본질적으로 그것 다음에 따라옴과 동시에 결국에 회심으로 이끄는 변혁들의 절정으로서 보면서 말이다. 이 대안적인 견해는 두 부분으로 검토될 것이다. 1부는 회심과 변혁과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발견된 “예수 지식”에 대한 질문을 검토할 것이다. 2부는 “예수 지식”의 질문에 대한 이것의 순간의 시점 (point)과 혹은 과정 및 의의들로서의 회심 및 변혁을 검토할 것이다.

1부 사도행전에서의 “예수 지식”과, 회심과 그리고 변혁
예수에 대한 기본적인 결단이 구원 결단이 참으로 발생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개인의 생활에서 얼마나 많이 필요로 하는가? 전도와 회심에 대한 대부분의 글들이 개인이 거듭나야 한다는 그 필요한 최소한의 “예수 지식”에 대한 토론을 거의 포함하지 않는 것이다.

Rick Brown이 "사람이 구원받기 위하여 예수에 대하여 최소한으로 무엇을 믿는 것을 필요로 하는가?”라고 묻는 때 가장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2 그는 계속하여 구원하는 신앙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불필요한 신조들을 기술하는 것이다. Brown은 결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구원 얻게 되는 신앙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한 것이며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신학적인 이해에 대한 커다란 깊이를 갖도록 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후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위한 전제 조건은 아닌 것이다... 구원하는 신앙은, 그것의 전치 적이며 또한 관계적인 양태들에 있어서, 단순하게 예수에 대한 “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에 기독교인의 삶 및 이해에 있어서 성장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에게 “예”라고 말하는 것. 이것은 정말로 충분한 지식인가? 이것이 만수르가 그가 예수를 따를 것을 결단하였다고 그가 말하였을 때 의미하였다고 할 수 있었을 가? 도움을 위하여 사도행전 서를 살펴보자.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던 개인들 및 그룹들에 대한 언급들과 혹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 위하여 필요로 된 것에 관련한 언급들이 20회 이상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언급들이 아래 표 1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사도행전 에서의 회심 <표 1>

2:21: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8: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3:17: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5:32: “그에게 복종하는 자들은”성령이 주어지는 것이다
8:12: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라
8:34-38: “예수에 대한 복음”을 들은 후에 내시는 세례를 받았다
9:5: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사울은 물었다. “나는 네가 박해하고 있는 예수다”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9:27: 바나바는 “사울이 어떻게 그의 여행 중에 주님을 보았고 또한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는가를 그들에게 말하였던 것이다”
9:42: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
10:43: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의 이름을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는다”
13:12: 생겼던 모든 것을 본 후에 그 총독은 “믿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주님에 대한 가르침에 놀라게 되었기 때문 이었다”
13:39: “그를 통하여 믿는 자는 누구나 의롭다함을 받는다”
13:48 이방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영예롭게 하였으며” 또한 “믿었던 것이다”
14:1: “수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믿었던 것이다”
15:19: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있는 것이다”
16:14: “주님께서는 바울의 메시지에 응답하도록 그녀의 (그 노예 소녀의)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16:31: “주 예수님을 믿으라, 그러면 너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너와 너의 가정”
17:4: 유대인들의 어떤 이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 “설득되었던 것이다”
17:12: “유대인들의 많은 사람들이 믿었는데, 또한 수많은 그리스의 여인들과...남성들이 했던대로 말이다”
17:34: “소수의 남성들이 바울의 제자들이 되었고 또한 믿었던 것이다”
18:8: “회당 장 크리스푸스와 그의 전 가족이 주님을 믿었으며 또한 그를 들었던 고린도인들의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것이다”
19:1: “예수를...믿으라”
21:20: “수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던 것이다”








이 회심 자들의 어떤 이들은 유대주의 및 유대 종교에 대한 많은 이전의 기초적인 이해를 가졌으며 한 편 다른 이들은 그런 기초들이 없는 전적인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들 개인들이 회심 자들이 되었던 여러 가지의 방법들이 있었음을 알아차리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로”부터, “회개하고,” “순종하고.” “돌아서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또한 응답하고, “설득되기”까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개인들에게 발생했던 것을 기술하곤 했던 그 주된 단어-예들의 절반 이상이-는 “믿는다”는 단어와 관계를 갖는 어떤 것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증가 적으로, 그러한 믿음은 어느 정도의 지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 평행적인 말은 Bown이 말한 것이다: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예”인가? 이것은 만수르가 그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했을 때 했던 것인가?

이들 사도행전의 구절들로부터 우리는 두 개의 예비적인 결론들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첫째,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던 많은 방법들이 있는데, 그러나 주된 방법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다. 둘째로, 우리가 회심 사건들의 어떤 것들에 대한 더욱더 많은 정보를 갖는 한 편- 예를 들면, 바울 자신의 회심 경험 (행 9:22,26), 고넬료와 또한 그와 함께 한 많은 이들 (행 10), 그리고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연설한 후에 회심했던 자들 (행 17),-대부분 많은 기초적인 신학적인 정보-“예수 지식”-은 회심 결단들 이전에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흔히는 이들 회심들은 설교 후에나 혹은 기적 사건 후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사건들은, 누가가 그것들을 되풀이하여 말한 대로, 실제적인 결단 이전에 발생하였던 여러 개의 더 작은 변혁들이 있었던 가능성을 필연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울 자신의 회심 경험에서 그는 이전에 스데반의 순교와 또한 그가 그들을 박해했을 때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결의를 보았던 것이다. 이들 사건들은 얼마나 많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는가? 동시에, 비록 만수르가 그의 기적적인 꿈 사건 후에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였다 할지라도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라 선교사와의 그의 주례적인 대화들의 결과였던 작은 변혁들이 있었던 것이다. 만수르의 기적적인 꿈 사건은 필연적으로 허공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시도행전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 지식”이 얼마나 많이 필요로 되는가는 흔히는 회심이 우선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들과 묶여져 있는 것이다. 회심은 한 순간의 시점인가, 한 과정인가, 혹은 그 둘 모두가 어떤 조합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직접적으로 분배된 “예수 지식”에 대한 정도 및 유형에 또한 발생할 수 도 있는 이전의 변혁들의 정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2부: 순간의 시점으로서 혹은 과정으로서의 회심 및 변혁과 그리고 “예수 지식”의 질문에 대한 의의들
회심에 대한 여러 가지의 전형적인 복음주의적인 접근방식들-4영리와, 복음수출과, 로마의 길과, 등등과 같은 것- 모든 것들은 “예수 지식”에 대한 여러 가지의 양들을 가진 예수에 대한 비슷한 시간 안에서의 시점의 응답을 열망하는 것이다. 이 접근 방식을 가지고 회심을 한 순간의 시점으로 보는 것은 쉬운 것이다: 개인의 생활과, 종교에 있어서나 혹은 문화에서의 하나님의 이전의 역사들이거나 대해 거의 생각을 갖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인데, 이것들은 실제로 일련의 작은 변혁들인 것이다. 그러나 표 2가 보여준 대로, 회심에 대한 다른 선택들이 있는 것이다.4

회심은 무엇인가? <표2>


1. 순간의 시점 ●
─────────────────────────────
2.과정+ 순간의 시점────────────→  ●
─────────────────────────────
3.순간의 시점+과정 ●─────────────→
─────────────────────────────
4. 과정──────────────────────→
─────────────────────────────
5. 과정+순간의 시점+과정
          ───────→ ● ────────→









표 2는 최소한 5가지의 선택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의 선택인 시간 안에서의 전형적인 순간의 시점 회심은 위로 이끌거나 혹은 그 시점 후의 어떤 것에 대한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그 시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선택 2와 3은 선택 1에 대한 변형들인데, 잠재적인 회심자의 삶에 있어서 어떤 변혁적인 과정을 허용하는 선택 2를 가지고서인데 그러나 회심 후의 어떤 따라오는 것을 갖지 않고서이다. 선택 3은 아직도 시간 안에서의 시점의 회심에 대한 강조를 두는데 그러나 계속적인 변혁에 대한 필요한 후속적인 과정이 있음을 보는 것이다. 선택4-오직 과정만-는 주로 변혁적인 것인데, 시간 안에서의 시점회심을 가지지 않고서이다. 이 선택은 실로 구원을 위해 가능한가? 개인들로 하여금 과정에서 계속 가도록 했던 시간 안에서의 어떤 결정적인 시점회심이 없었는가?

나는 선택 5는 개인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결단하는 때 아주 흔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앞선 변혁적인 과정은 결단을 확인하거나 또는 증강시키는 계속적인 변혁적인 과정에 의해 따라와진 의식적인 시간 안에서의 결단에로 이끄는 것이다.

나는 특별히 선택 5를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이나 혹은 그녀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의식적인 결단을 만들기 전에 개인의 삶에서 성령의 앞선 역사를 허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더욱이, 이 다섯 번째의 선택은 계속적인 일련의 변혁들이 결국에 시간 안에서의 시점 결단에로 인도하는 잠재적인 예수님 제자에 대한 종교적 및 문화적인 이해들 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회심에 대한 분석은 항상 회심에 포함된 변혁적인 과정과 또한 최소한의 과정일지라고 어느 정도의 “예수 지식”이 주어져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의 예들에서 명백한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예수님에 대한 어떤 지식이 주어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다만 얼마나 많은 지식이 의의 있는 것이 되는가? 시간 안에서의 시점으로서의 회심 방법과 매우 관련된 복음주의적인 도구-4영리-일지라도 상당한 정도의 지식 요함들을 갖는 것이다: 각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 죄인들로서의 인간들과 허나님에 의해 분리 된 것과; 인류의 죄에 대한 유일한 대책으로서의 예수님, 그리고 등등.

다섯 번째의 선택-과정+순간의 시점+과정-은 자연히 그것 자체를 더 많은 “예수 지식”에로 이끄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발생하는 변혁을 허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회심은 실로 “예수님을 향한 더욱더 긴 운동”의 일부이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 안에 회심의 행위는 예수에의 이해에 대한 더 큰 앎을 향한 그리고 결국에 예수님에 대한 위탁을 향한 개인 생활에서의 계속적인 변혁적인 운동의 단순히 시간 안에서의 한 시점인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이 운동”의 대안은 표 3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운동으로서의 회심 및 변혁 <표3>



                예수님을 향한 운동
──────────────────────────────────→

    추구     →         만남            →       ●       제자직   →
 “진리”후에         예수님의 진리와의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에
                                          관한 결단의 시점





어떤 형태의 변혁적인 과정으로서의 (짧거나 혹은 길거나) 결단의 시점으로서 오는 것으로서 보여 진 회심은 복음을 가져오는 자는 잠재적인 회심 자와의 관계를 세우기 위하여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처들 및 필요들을 말하는 것과, 공통성의 시점들과, 종교적인 견해들과, 문화적인 실천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컨대, 실로 그와 혹은 그녀를 위하여 좋은 소식-복음-인 것을 그려보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적절한 “예수 지식”은 잠재적인 예수님 제자와 함께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관계-세움의 과정 동안에서 인 것이다. 작은 변혁들이 발생하는 곳은 여기에서 인 것이다. 만수르는 꼭 그러한 경험을 가졌던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한 많은 방법들이 있는 한 편, 나는 여기에서 근본적인 방법은 단지 예수님을 주로서 만든 것을 논의할 것이다.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은 어떠한가? 나는 이 최소한의 인지는 주요한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의 삶에 있어서 예수님은 따라오게 될 필요가 있는 그와/그녀 자신을 넘어 계신 어떤 이라는 것을 반영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Brown의 “예”라고 말하는 것과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만수르의 결단인 것이다.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인지는 자연적으로 변혁적인 제자직의 과정에서 수행할 것이거나 혹은 수행해야하는 예수님을 향한 계속적인 운동의 예수 제자의 삶에 있어서의 시작에 대한 열쇄인 것이다. 물론 주님으로서 예수님을 인지할 그 처음의 인식론적인 결단이 결과적으로 더하여질 필요가 있는 많은 다른 “예수 지식”이 있는 것이다. 아래 표 4에서 보여 진대로, 회심/변혁 거꾸로 된 피라마드는 따라와야 하는 예수님에 대한 정보와 또한 제자 직 과정에 있어서 정보를 줌의 때에서의 한 시도를 보여주는 것을 돕는 것이다. 그것은 만수르와 같은 어떤 사람을 염두에 두고서 세워져왔던 것이다.

회심ㆍ변혁 거꾸로 된 피라미드 <표4>


예수님은
3위일체의
3위이시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한 값이다
예수님은 레위기적인 희생들의 완성이시다
예수님은 선재적인 분이시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 이시다
예수님은 창조자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언젠가 돌아오신다
예수님은 구원을 위한 유일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나를 위한 속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 보냄은 받았다

예수님은 나의삶의 주인이시다
예수님은 나의 충성에 빚지는 자이시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거꾸로 된 피라미드는 우리에게 어떤 변혁적인 제자도의 과정을 위하여 필요한 주 예수님에 대하여 더 많은 정보의 층들의 파악을 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이 거꾸로 된 피라미드로 더욱더 나아가는 때 더 많은 정보가 예수님에 대하여 주아진다는 것을 주목하라. 7 모든 정보가 사실인 한 편, 그것의 모든 것은 예수님에 대한 비-제자가 따르거나 혹은 예수님에 의해 변형되어지기에 앞서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에 대한 동등하게 중요한 정보가 될 수 도 있으며 또는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는 것이다. 상이한 기독교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여러 가지의 거꾸로 된 피라미드의 상자들의 상이한 종류의 정보를 둘 것인데 그들 자신의 구원 경험과, 세계관과, 교파적인 제휴와 등등에 의존하면서 말이다.

결론

마지막으로, 만수르와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그의 결단에로 돌아가자. 그 날에 만수르와 만남을 갖고 있었던 선교사는 이전에 그와 더불어 예수님에 대한 많은 대화들을 가졌던 것이다. 그럼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만수르의 꿈 이후의 결단은 예수님에 대한 어떤 이전의 지식에 기초되어 있었는데, 이 지식이 그것이 주어졌던 당시에 만수르에게 필연적으로 명백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만수르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지하기 시작하기 위하여 -그 꿈에 의하여 확인된-충분한 지식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선교사의 응답은 단순히 만수르의 결단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고, 만수르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었고 또한 만수르에게 그가 만들었던 그 결단에 비추어 예수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이었던 것이다. 만수르와의 그의 주례적인 대화들은 -정통주의와 또한 정통실천에 관하여- 더욱더 신학적인 문제들을 세워가면서- 계속되었는데, 만수르가 이제는 그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향한 그의 변혁적인 움직임가운데서 계속하였던 것이다. 만수르는 이 날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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