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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 성현
2016년 09월 23일 (금) 11:17:56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verehomo@hanmail.net
   
▲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영원한 현재

종교현상학에서 시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어려운 분야 중 하나에 속한다. 시간은 물리적으로 같은 속도와 단위를 지니고 있다. 시계가 가리키는 1시간은 어느 공간에서나 같은 측량의 결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만일 나에게 정확히 60분의 시간을 주며 창조적 작업을 시켰을 때 어제의 60분과 오늘의 60분은 질적으로 다른 비중을 가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날 약속을 하고 기다리는 1시간은 매우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연인들이 만나서 즐거운 대화와 애정을 나누며 지난 1시간은 매우 빨리 지나가버린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지루한 노동의 1시간이나 즐거운 사랑의 1시간은 모든 물리적 시간 단위에서는 60분이라는 같은 과정을 갖고 있지만 각 시간의 흐름에 참여한 참가 요인에 따라 시간의 질은 구별된다.

이런 시간의 이해를 이미 프랑스의 삶의 철학자요, 창조적 진화론의 주창자인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수학적-물리적 시간과 생물학적 시간으로 구별하였다. 베르그송은 이 두 시간을 “강도(Intension)”와 “신장(Extension)”으로 대체하였다. 그는 시간의 강도는 질(Qualitaet)로, 시간의 신장은 양(Quantitaet)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시간을 질적인 시간과 양적인 시간으로 구별하고 나면 인간은 매 순간 두 시간의 차원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질적인 시간은 의미가 채워져 있는 시간을 가리키고, 양적인 시간은 한 인간이나 사건의 의미나 내용에 의존함이 없이 지속해서 흘러가고 있는 같은 속도의 시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양적인 시간은 의미가 제거된 시간일 수밖에 없다.

속인이 수도사의 과정을 마치고 성직 의례를 통하여 성직자로 바뀌는 그 찰나는 그 사람에게 그 어느 시간보다 거룩하고 의미 있는 질적 시간일 것이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시간 중에서 주례자가 신랑과 신부의 선서를 받고 이 결혼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공포하는 순간이라던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국민 앞에서 대통령 선서를 하는 그 순간은 질의 전이가 숙명적으로 야기된 순간이며 질적 시간이다.
  
이상에서 보기로든 사건들은 ‘경건하다’거나 ‘성스럽다’, ‘엄숙하다’는 등의 표현을 써서 언급된다. 그것은 세속적인 반복성이 배제되어 있으므로 유일회적(einmalig)이며 동시에 유일의적(einsinnig)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몇 번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남자와 그 여자의 그때 혼인은 오직 일생에 일회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결혼에 포함된 의미도 일의적일 뿐이다.
  
시간적 성현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발현된다.
첫째, 모든 시간은 물리적이며 의미적(종교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시간관에 따라 시간의 세속적 본질과 성스러운 본질, 즉 세속적 시간과 성스러운 시간이 나뉜다. 성스러운 시간은 세속적 시간의 ‘이질성 양태(異質性樣態, heteromode)’며, 특별한 때에 돌출되는 초월적 의미에 의해 규정된다. 비근한 예로 세속적 공간에 성소가 존재하지만, 성소는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세속적 공간과 영원한 질적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독교는 예수가 제자들과 나눈 최후의 만찬을 중요한 의식 가운데 하나로 거행한다. 예수는 공생애 3년 동안 제자들과 숙식을 함께 했지만, 그리스도로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려야 하는, 그리고 인간 예수로서 생을 마쳐야 하는 마지막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하며 나눈 만찬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그 많은 식사 중에 이때가 신인동체(神人同體, Vere Deus et Vere Homo )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인간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시간이며, 지상에서의 영원한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 시간을 성화했고, 예수의 만찬을 인간의 구속과 관련시켰다. 성스러운 시간은 이처럼 인간의 시간에서 어떤 동기나 순간이 영원히 질화하는 순간이다.
  
둘째, 시간의 매 순간은 항상 유일회적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πντα ρει)”라고 주장하며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다고 역설했다. 한번 건너온 강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자연현상은 유일회성을 지닌 본질로서 과정 중의 존재로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종교현상학이 시간의 성현화를 궁극적이며 유일회적인 의미와 연계하여 역설하는 것도 존재의 독특성과 개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유일회적인 현상과 유일의적인 본질을 절대화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현자(賢者)에게서 이러한 양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들은 평범한 자연현상을 특징화시켜 범인(凡人)들로 하여금 의미의 일회성을 수용하게 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일상사(日常事)를 복합적으로 해석하며, 사건의 일의성을 매 순간 구조화하려 한다.
  
성스러운 시간은 사건의 어느 한순간이 비지속적인 단절점으로 성현 된 시간이며, 이 사건에 직접 참여한 사람에게 일회적이며 일의적인 의미가 주어지는 시간이다. 이를테면 떨리며 엄숙한 마음으로 결혼 선서를 하는 신랑과 신부에게서 그 순간은 일생 잊을 수 없는 성스러운 시간이지만 결혼식장 지배인에게는 그동안 많은 사람이 결혼한 시간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셋째, 성스러운 시간은 신화적 시간을 포괄하고 있다. 인간은 절대자를 의인화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신화는 인간의 이런 본능이 구체적인 진술 형식으로 표현된 내용이다. 신화는 항상 그 내용을 반복적으로 의미화 한다. 여러 종족에게서 신화는 실제적이고 그래서 인간의 삶과 직접 관계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구체적인 표현이 종교 의례나 축제 같은 것을 통하여 반복되거나 주기적으로 거행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신화의 원형으로부터 발생된다는 말이다.
  
종교의 창조 설화나 인간의 원조에 대한 신앙이 신화적으로 기술된 것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신화 창조적 본능 때문이다. 성스러운 시간, 시간의 히에로파니, 즉 성현화한 시간은 이런 인간의 신화 창조적 본능이 세속적 시간을 질적으로 영원화한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적인 것은 유한하고 질료적(質料的)이지만 영원한 것은 무한하고 초월적이기 때문에 그 의미도 영원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세속적 시간 중에서 특별한 순간의 시간이나 사건의 때를 성별(聖別) 하여 성스러운 시간으로 성현화 했다는 말이다.
  
인간의 주관적 삶이 어느 한순간에 몰입되어졌을 때 시간의 성현화는 가능하게 된다. 주관적 자기 몰입의 순간은 인간의 구체성을 그 순간에나마 신성화하려는 것이며, 인간사(人間事)의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순간에 들어간 신적 시간의 유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스러운 시간이란 인간의 본성에 잠재된 신화 창조적 본능에 의하여 구현된 신화의 내용이 반복적으로 거행되면서 인간을 신화의 세계에 몰입시켰을 때 생겨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사의 모든 행태인 탄생, 성인식, 성별식, 결혼, 출산, 취임, 퇴직, 질병, 죽음 등은 세속적 시간에 신화의 세계가 개입된 순간들로서 성스러운 시간과 세속적 시간의 만남의 사건들이다.
  
넷째, 성스러운 시간은 물리적 현상이 종교적으로 의미화 된 시간이기도 하다. 원시 농경민족에게서 달의 주기는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반달, 초승달, 보름달의 인력(引力)은 물의 흐름과 인간의 생리와도 관계있으며 태풍, 홍수, 가뭄 등도 달의 운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여성들의 생리가 달과 관계되어 있으므로 달을 여성 신으로 신앙하는 종족도 있다.
  
아직까지도 지상의 많은 종족은 달의 성현적 힘이 우주, 생물, 인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믿으며, 이 힘을 생식능력이나 출산 등과 연계해서 해석한다. 저들은 세속적 시간에 신적 위력이 잠입하는 순간, 그 시간은 성스러운 시간이 된다고 믿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의례를 거행한다.
  
원시시대에서부터 이런 의례는 항상 춤과 황홀경을 일으키는 몸짓으로 표현돼 내려왔다. 많은 종족 중에는 아직도 달밤에 여자들이 줄을 지어 남근의 상징인 신목(神木)이나 양석이나 탑을 중심으로 여근의 상징인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군무하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는데 술래가 한 사람씩 허리를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며 돌아가다가 어느 지점이나 가락의 마디에 와서 그 사람은 놓아지고 그다음 사람이 붙잡히는 차례 돌이의 단순한 춤이 많다. 술래는 남자로, 잡히는 아가씨는 여자로 상징화되는 이 놀이는 달의 주기에 맞추어 행해지는 것이 특색이다. 이런 의식들은 우주적 리듬을 성스러운 시간으로 믿는 자연 종교적 신앙에서 발생된 것이다.

“한국 여성들이 달밤에 노는 술래잡기, 탑돌이, 강강술래, 그리고 기와밟기, 살쾡이 놀이 등에서 술래를 설정한 것은 이 같은 번식력 또는 여성의 번식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풍년을 비는 그런 중기풍(中祈豊)의 제전이 유희로 변모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李圭泰, ibid., p. 160).

아무튼, 인간은 오래전부터 우주적 리듬이 성스러운 시간을 창출한다고 믿었다. 달의 성현이 생식능력을 보강하거나, 성욕을 왕성하게 한다는 믿음 역시 우주적 리듬과 시간의 관계를 종교화한 것이다. 이런 믿음에 따르면 우주적 리듬과 관계된 모든 시간은 성현 된 시간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성현 된 시간은 영원한 현재의 시간이다. 좀 더 자세히 진술하면 성현 된 시간은 어떤 동기에 의해서 성스러운 시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론적으로는 세속적 시간에 영원한 시간인 영원성이 개입되어 질적으로 변화된 시간을 의미한다. 시대를 소급해 올라갈수록 이런 성현 된 시간은 인간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생식능력, 번식력, 생명, 재생 등의 의미를 포함한 상징으로 나타난다.

아프리카와 중근동 지역에서 행해지는 할례 의식이나, 세계 여러 곳에서 관습화 되어 행해지고 있는 성인식, 성녀식, 침례, 성욕식, 거듭나는 의례 등은 모두 성적 현현을 승화하여 성스러운 시간으로 변형시킨 의식들이다. 성스러운 시간은 세속적 시간과 예배와 같은 종교적 의례에 의하여 성별 될 뿐만 아니라 혼례식, 출산, 성녀식, 성인식, 초조 의례, 신혼식 등과 같은 종족 특유의 의례에 의해서도 성별 된다. 남녀의 결합은 우주적 조화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원시 종교에서는 신성한 것이었다. 성스러운 시간은 성적(性的) 표현이 승화한 에로티시즘의 절정 순간을 내포하고 있는 시간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세례를 받게 한다. 한 인간이 세례를 통하여 깨끗한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성스러운 시간에 살고 있다는 확고부동한 신앙이 있을 때 체험되는 것이다. 인간은 신앙의 강도에 따라 현재의 시간에서 영원한 시간을 체험할 수 있다. 거듭남의 시간, 신자로의 결심과 회심의 때가 영원한 현재다. 이 역시 인간에게 육신적-정욕적 차원과의 관계에서 성현 된 시간을 규정하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박해하다 한순간에 하늘로부터 빛과 음성이 있어 개종한 후 그리스도의 전도자가 되었다(행 9). 그에게서 개종은 시간에서 영원을 체험한 사건이었다.
  
생명이 거듭난다는 사상은 삶의 철학적 도식으로도 정리된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만물은 오고 만물은 가버린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이 말은 상식적인 어구로 들리지만, 그는 이 말에 담긴 만물의 본질을 영원한 회귀의 철학으로 해석하며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규명했던 것이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기적으로 해석하는 역사철학이라든가 생명체의 재생을 주장하는 종교는 성스러운 시간을 한결같이 “위대한 날(der grosse Tag)”이나 “위대한 해(the great year)”, “의미로 충만한 시간(kairos)” 등으로 규정한다. 이 성스러운 시간은 우주적 순환 원리에서는 유일회적 사건을 통해 현현되지만, 개인이나 인류 역사의 순간들에서는 매 순간이 성현 된 시간이 될 수 있는, 긴장되고 열려 있는 유일의적 시간이다.
  
여섯째, 영원한 현재의 시간적 의미는 현재화한 영원의 차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영원한 것을 동경하게 되어 있다. 인간의 이러한 본질이 ‘유한성 열등의식’이다. 유한성 열등의식을 안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영원에의 동경을 하며 살고 있다. 이 영원에의 동경은 성소를 낙원의 구원체로 믿으려는 성소 의식과 같은 맥락에서 발상 되는 것이며, 성스러운 공간인 낙원이나 천국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소망이 그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종교적 소망으로 충족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유한성 열등의식이 영원한 곳과 영원한 때를 갈망하는 신앙으로 제도화된 것, 그것이 종교다. 이곳에서 엘리아데의 말을 빌려 결론을 맺고자 한다.

“‘영원에 대한 향수(nostalgia for eternity)’는 인간이 구체적인 낙원을 동경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곳 지상에서 그리고 지금 이 실존적 순간에 낙원을 체득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살고 있다.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고대 신화들이나 의례들도 ‘지상의 낙원(earthly paradise)’이나 인간이 접근할 수 있고 ‘실감할 수 있는’ 영원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M. Eliade,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 p.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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